종교 심리학, 폴 에마누엘 존슨의 1952년작 "종교와 심리", 큰누님 기리며 신앙으로 전진
폴 에마누엘 존슨의 1952년작 "종교와 심리" 아마 3번째 읽은 것 같다
psychology of religion, 1955, 1962, Paul E Johnson
읽을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이해도는 높아지고
70년전에 씌어진 책인데도 이렇듯 와닿을까 싶은데
1. 종교의 심리학적 연구
2. 현대의 종교심리학
- 상충론 ; 프로이트
- 집합론 ; 유
- 인격론적 시리학 ; allcourt
- 상호인격론적 심리학 ; 부버
- 종교와 인격성
3. 종교적 경험
-종교적 각성의 식역
- 관심, 욕구, 가치
-나와 당신
- 종교적 감정
5. 종교적 성장
- Scot Peck 상기된다
사람은 성장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으름과 나르시즘에 빠지면서 퇴락, 퇴행의 길로 가며
이게 집단으로 악화되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된다
6. 회심
- 가가와 도요히꼬
일본 군국주의 시절, 평화적 사회주의, 포용주의 실천했던
이런걸 봐도 일본의 역사 깊이는 꽤 있다 싶당만
7. 기도와 헌신
-discipline
8. 예배
- 상징성
10. 종교적 행동
- 무의식적 동기
- 종교행위
- 죄와 죄책감
- 화해를 희구; 돌아온 탕자
-용서와 사랑; 궁극적 해결책
11. 종교와 건강
-건강과 건전성
-건강의 감정적 요소; 무의식, 감정영역 참 중요하다
-영적 치유
- 종교의 치료적 봉사; 육체건강이 주는 아니다
12. 종교적 소명
- 소명감
- 직업과 평신도; occupation - 시간과 공간의 점유
- 역할개념은 상호인격적 interepersonal
- 소명의 딜레마; 하고싶은데는 시간배분 잘 안되고, 행정적 일상적 잡무에 시달리는게 어쩌면 인지상정이고 사회일상이려나?
- 제어와 단련
13. 종교적 공동체
- 사회이론으로서의 상호인격주의
- 공동체 형성의 욕구; 가장 근원적이다
이건 시장기능으로만 해결될수도 없고
그렇다고 조선시대나 현재의 북한체제처럼 정신만 강조하는 공동체와 국가주의만으로도 안된다
- 종교 공동체와 지도력; 외적 강제력보다는 내적 융합력
- 의사소통의 문화 필요
- frontiers (현안들)
. 소통
. 일차적 인간관계의 샘물 역할
. 사회적 치유의 필요
. 인격의 창조적 융합 통합 필요
. 상봉; 긍극적인 욕구는 대화하는 상대방 관계구축과 유지, 성장이리라
1972년에 출판된 책이라서, 참 낡았다. 종이가 찢어질까 조심스럽다
번역자 김관석씨도 참 훌륭한 분이신데
이 책은 이제 돌아보면, 제기동에 소재한 동도교회 소장 도서였던 것 같다. 아마도 큰누님이 빌렸던 것 같은데, 현재는 내가 소장한 셈이다
책의 내용은 말해 뭐할까 싶을 정도로 좋다.
그런데 큰누님 소천하시기까지 참, 가슴이 아프다 싶어 트라우마 비슷하게 마음이 늘 어둡다 보니
기실 근처에 가고 싶은 마음도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서 홍릉쪽 카이스트와 미팅을 여러번 하고,
시간 날때, 일부러 청량리 시장을 잠시 둘러보면서도
한번도 그쪽에 갈 생각은 엄두에도 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근처 정화여상이란데도 작은 누님이 나오셨던 데였으니, 이쪽 동네가 내 어린 시절 상당히 깊게 각인된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아픈 기억이 있던 시절이었던 만큼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누어지내실 정도로 아프셨던 큰누님에 대한 상심으로 트라우마성 거리두기 distancing 계속 되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나왔던 용두초등학교, 그렇게도 낙후될 수 있을까 싶은 지역에는 몇번 갔었다. 친했던 친구 3명과 일부러 찾아가서 각각 회포를 풀었는데
사실 그 녀석들은 나때문에 억지춘향으로 기분 맞춰주었을터
그 지역도 이제는 천지개벽에 가까울정도로 100% 재개발이 되었으니
그리고는 큰누님 때문에 크리스마스 같은때 잠시 다녓던 광석교회, 그리고 제기동의 동도교회가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사진을 보니 참 크기도 하다
지역은 낙후되었어도 교회는 커가기만 했던 모양이다
더욱, 2013년부터 옥한흠목사의 사촌동생인 옥광석 목사가 부임한 이래 몇년간 재판에도 연루될 정도로 싸움도 많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옥목사 힘든 과정에서 배후에 있었다는 길자연목사님은 지금 관악구의 왕성교회 세습으로 문제에 올라 있는데, 1961년엔가 대광고를 졸업하셨다니 내게는 한참 선배가 되ㅇ는데,
한겨레 지적대로, 이제 한국교회는
예전에 내 어린 시절에는 아마도 가난한 교회로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한국경제 성장과 더불어 어느덧 엄청 부자교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제는 제 2의 탄생이 필요할 정도록 내부적으로 문제가 누적도 되어 있는것 같은데
개신교라기보다는 카톨릭인 내게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초대형 교회가 주는 나쁜 이미지가 적지 않은 와중에
횡단면적인 편미분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원래 현실적인 것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그러고 싶다
그래서 짤라서, 일정기간만 편적분을 해서 기억하고 싶다
춥고 배고팠지만, 그때가 더 좋았던가?
성탄 선물때문에 갔었지만, 아마도 길 강도사, 이분이셨나 기억이 가물한데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설교 말씀이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잘 들었던 기억
혹 그 분이 오늘 문제로 된 길자연목사, 왕성교회라면 참 씁쓸하다
역시 카톨릭처럼
때가되면 이동시키는 강제성 인사발령이 필요해 보이기도 한것 같다
당연히
뿌리깊은 장로들의 횡포도 견제되어야 할 것이고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그리도 감동깊게 교육받았던 우리에게
매주 수요일마다 성서공부도 하고, 학교 예배도 드렸던 내 고교 시절
그 좋은 추억,
공군 재직중에 시편 31편을 외우는 미공군이 신기해서 히브리 성서를 공부하다가 연세대를 중퇴하고 신학으로 변경하셨던 목사님,
야구매트로 수련원에서 학생들 엉덩이도 때려주시던 그 좋은 기억들
대광고는 졸업식이 영락교회에서 치뤄진다
그래서 내가 첫직장으로 쌍용그룹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그 아름답던 시절
열심히 살던 시절
큰누님 그리도 오랜 기간 아프지만 않으셔써도
큰매형때문에 당했던 그 큰 경제적 타격도 지금은 웃고 넘길 수 있겠다만
아프시다가 소천하신게 지금도 마음 아파서
예전을 잊고 살고 싶었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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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녀석의 지적대로, 다른 맥락에서였지만
소인배는
덜 아름다운 과거는 자꾸 잘라 내려한다,
반면 군자는 이어간다.
그 어떤 과거도 연결시킨다는
그 말이 참 올다싶기도 하고
신앙인으로서 진정한, 참된 믿음으로
지난 시간, 과거도 돌아보고
건전한 마음으로 큰누님,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리면서
고백하고 기도드린 이상, 신부님 말씀대로
이제는 믿고 더이상 상심하지 않도록 주의경주하면서
정면으로
두려움 없이
동도교회도 다시 돌아보고
그리도 낙후된 청량리, 제기동, 용두동 등 지역도 돌아보고
필요시 연결될 준비를 하고
무엇보다도
Paul Emmanuel Johnson, Religion and Psychology
3번이나 읽으면서 감사의 깨달음을 받았다면
이것이 은총이리라
한가지 나는 이런걸 영어로도 읽을 수 있고
더 큰 그림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연결시킨 수 있는데
큰누님은 어떠셨을까 또다른 측은감과 아픔이 있으나
그건 내 생각일것이다
아까 보았던 "나랏말싸미"에서 송강호 세종대왕이 스님에게 혼나듯이
그리도 백성백성 하면서, 그네들에 대한 믿음은 없는 것 보면 표리 부동아닌가
오히려 백성에게 의사결정권 주면 탈나는 것 같은 성리학적 사고방식
플라톤적 아이디어가 지배적인 내가 되었으니
내가 정말 백성을 알겠나?
겸손하게 배우는 자세로 대중문화를 보도록 하자
그리고 내 주변의 역사도 살펴보자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려니와
내 피상적인 느낌으로 해석될 역사와 공간이 아니었을 터이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리라
다시금 겸손한 마음을 추스리고
은총을 구하는 마음으로
religion is the dedication to the Ultimate Being,
which is believed to be the creative potentiality for our life
through enlarging relationships
아마 이런 걸텐데
마지막 결론에서
- 소통의 이슈를 부각하고
- 대중이나 고독한 군중에 뭍히지 않고, 일차적 관계를 샘처럼 솟게 하고
- 사회치유적 측면으로 종교공동체 역할이 필요하고
- 인격 내부의 산만한 욕구의 충돌을 창조적으로 통합하고
- 끝내 인간은 대화되는 상대와의 상봉을 지향한다는 것
ㅇ그리고 이제는 배부른 편이 되다 보니
모든 사람들, 광고언론은 더욱 그렇거니와
육체건강 최우선, 오직 그거 하나만 생각하면서
무작정, 기약없이 그저 행복하게 사는척하자에 몰두하자는 현대적
풍토에
healing - whole - holy
어원이 같음을 얘기하면서
몸과 맘이 고루 건전할때 그것이 건강임을
그런 점에서는 동양의학이 한편 위라는 것을 느끼면서
과거를 포용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