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기

2024년 방배동 토요단상

paulcjkim 2024. 7. 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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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27일에 이사왔으니, 이제는 3개분기째 이어진다

한편으론 이 동네가 더 정겹다, 반포래미안 아파트는 너무 천편일률이었던데 반해, 동네가 다양하다.

오늘 새벽 3시경에는 동작대로를 두번 잠깐식 걸었다

그리고 카페골목을 한번 걸어보고

피씨방을 두군데 들러봤다

멀쩡하게 생긴 젊은 청년들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앉아서

그리고 아웃도어도 있는 맥주 와인바에도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서, 술취한 주인 같은 젊은이가,

무단침입이라는 등 주정을 하는 것도 들었다. 아웃도어 문이 열려서 잠깐 본것이라고 말하면서 위기를 모면했나?

이 시간에는 모든게 조용했다

젊은이들의 고민, 일부 흔적은 느껴지는데

예전 군산에서 출근길에 보앗던 청소 2인조를 보았다

야광옷을 걸치고, 바삐 움직이는 두 젊은,아마도 서울시 환경공단 같은데 직원들이려니와, 군산시 청소담당처럼, 잘생긴 젊은이들의 노력하는 모습에 좋은 인상이 든다, 그래 안정적인 공무원 직업으로, 비록 새벽에 이렇게 다소 지저분한 청소일을 하지만 다들 보람되게 살아갈 것이라, 이네들에게 검박한 즐거움, 삶의 기쁨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저기 방배경찰서가 동작대로에 있거니와

이면 골목쪽으로도 저기가 방배서구나 라는 인식이 이제는 든다

거기를 세번 다녀왔다, 그래서 방배서 뒷문쪽 골목도 알게되었다만

이제 전방위적으로, 중앙지법 민사쪽 형사공탁업무도 해봤고

대법원 민원실 및 자료복사실 경험도 해봤다

내가 2008년인가 대검 중수부에 두번 다녀왔던게 첫 경험 같은데

그건 내건이었고, 한번에 10시간여 있었지만

담당 검사가 마지막에 좀 특이한 중수부의 엘리베이터에서 안내환송하면서 본인이 내 후배라고, 오늘 업무는 공무임을 양해해 달라고

기억난다, 그래서 내 첫인상은 꽤 좋은 편이었다

당시 바이마르공화국 책을 가지고 들어갔었다

반시간 단위로 비웠다가 다시 들어왔다 하는 담당 검사, 슬쩍 물어본다

책이 그렇게 재미있느냐고?

이 바이마르공화국은 당시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전형이고, 결국은 통화가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된게 인플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엇고, 궁극적으로는 ㅔ제 1차대전의 후유증에 독일국민들의 불안감 기약없음으로 비롯되었기에 단순히 재미를 넘어 의미있게 독서중이라고 대답했었고

검사 본인은 올때마다 커텐을 내렸다

그런데 거기가 8, 9층쯤이었는데, 밖의 전경이 참 좋았다

그래서 난 커텐을 올렸다.

세번째쯤 라운드에서, 검사왈, 이 커텐을 내리는건 여기 출두하신분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니 협조해달란다. 바록 직전에 현대그룹 정? 그이도 크게는 우리 대학선배이시지만, 그이가 여기서 기자들 카메라에 찍히고, 그 수치감에 결국 자살하기게 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당연히 검사의 협조에 기꺼이 응했다

그런 기억이 2008년인가 첫 기억이었는데

이제는 좀 알겟다. 여기가 대검찰청이고, 바로 옆이 대법원이고, 여기는 서초역이고

저쪽 교대역쪽에는 서울중앙법원이 있고, 서초역쪽으로 중앙지검이 있다는 것을

얼추 다 들러보게 된 셈인데

이렇듯 법조계 지역이 넓은걸 실감했다. 교대역부터 서초역가지가

법원사람들도 꽤나 친절하다는 인상이 내게는 있다

결국 당사자인 아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전혀 모르겠으나

변호사 도움없이 내가 수행하는 활동에 그네들은 참 고맙게도 설명을 잘 해주면서 도와준다

이제 방배경찰서도 다녀오게 되엇다

수사관들이 참 미남미녀 같다는 느낌마저 들고, 그네들의 부모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규정을 우선하면서도, 나름 노력하며 살아가는 모습들

요즘 세대들의 영화는 거의 음모론이 처음부터 일관하지만

사실 세상의 80% 이상은 음모보다는 organic 흐름에서 벌어질 거라고

세상에 돈으로 학력을 살수만은 없고

태광그룹처럼 돈으로 뺀다고? 아니다 그건 잘못 아는거다

이회장은 그 많은 돈에도 불구하고, 4년을 복역했고

어머니도 염면하셨다

친구도 없다. 돈이 넘쳐나 겉으로는 순종적인 듯한 친구들인냥 하는 사람들이 있겠다만, 이제는 그마저도 없어졌을 것이다

그래, 세상에 돈으로만 되고, 음모로만 되는 건 아닐 거다

더러 내 이기적인 느낌이지만

이럴줄 알았으면, 차라리 법학과로 진학할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대충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은데, 차라리 경영학과처럼 사람들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돈이 추구되는 환경보다는 주제나 제재가 법조계가 차라리 낳을텐데, 그 고시공부를 해야할 생각에 거부했고

그렇다고 정말 원하는 철학과는 선생님들의 적걱적인 만류로 못가고, 결국은 대학선배이자 고교선배인 한상국선생님때문에 경영학과에 진학해서

얼핏 고액연봉자의 길을 지나왔고, 이제 국민연금 수령을 하지만(통장 2개니, 이도한 고마운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짙게 든다

그렇지만, 포기하지는 말되

내려놓을건 放下의 자세로 임하련다

도망치지도 말고,

정면으로 대응하되, 무난하게 정석대로 대응하면서

어쩌면 최대 2년의 기간, 또 못할건 뭘까?

모시는 사장님도 1년 9개월 다녀오시지않앗나? 예전 민주화 관련으로 1년여 다녀오신 이래로

80세 인생에서, 너무 연연해 하지 말고

나름 의미를 찾으면서

다만 지금 제일 부족해 보이는게 검박의 지혜, 이걸 집중 기도하면서

그렇게 나아가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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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로 돈벌기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통째로 넘기라해서, 티스토리에 공개블로그를 별도로 만들었지만

애드센스, 애드구글로 지금까지 누적된 돈은 2달러가 안되고, 500원이 안된다

네이버에도 응모해봤으나, 방문자수가 워낙 미달해서 안된단다. 하긴 15개 내외인 것 같은 내 블르고

어떤 블로거가 2주간 도와주겠다고 해서 블로그를 알려주니

세상에 매일 5천개 이상의 방문자수가 찍힌다

그래 2주간 기록으로 다시한번 네이버에도 응모해보자 싶다

그런데 김제니라는 블로거는 매달 기십만원은 물론이요, 본이는 월 기천만원대의 수익을 올린다고 본인이 내게 알려준다. 소통하면 방법을 알려준다고

그래 이렇게 돈버는 사람들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지금 블로그를 계속하는 이유는

- 내 글을 정리해주니, 공개만 하지 않으면 내 기록 체계화를 네이버가 도와주니까

- 약간의 소통을 통해서 블로그 광고수입 등이 생긴다면 예컨데 월 50만원 정도 꾸준히 생긴수 있다는 기대로 한다만, 물론 아직도 6천여개 글 중에서 공개는 2천여개일뿐이지만

이런 내 마음의 단상도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보는 바이고

그러면서 한편 내 마음 단련의 계기로도 여긴다

삶의 과정에서 뭐 그닥 부끄러울건 뭐고, 안될건 뭐겠나 싶은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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