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8. 10:48ㆍ카테고리 없음

1270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그 역사적 의미가 큰 획기에
반면 1200년대는 감감한 상태라 연표를 몇번씩 보게 되는데
보니까, 1258년 최씨정권이 60년간의 집권을 마무리한다는 대목에 표시가 되어 있다.
고려왕조 500년을 생각할때, 가장 놀라게 하는 사실은 최씨의 집권이 무려 60년에 달핶다는 것이고, 이 정권이 대몽항쟁을 했다는 것이고
이후에도 삼별초의 난은 고려정권과 대몽항쟁의 기치로 이루어진걸 감안하면
사실상 1200년대 내내 고려라는 정통왕조는 세력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한때 테레비 드라마에서 무신정권들을 다루었는데
정말 저렇게도 무질서한 상황이었나 싶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래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그리고 이어서, 역성혁명을 통한 조선왕조 건립이라는 획기까지는 가지 못하고
많이도 참고, 기존 질서 왕씨 성을 유지하면서 살았음이 두드러진다
한국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 것도 같다 싶다
그러면서, 정권유지를 위해 그 얼마나 민생은 도탄에 빠졌을까 싶다
철종 재위 이래, 1800년대 내내, 정권유지를 위해 천주교를 박해하며
일본의 점령까지 "무난히" 이어지는 과정
일본의 공식 점령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35년인건 물론이고, 이미 1870년 이후 러시아와 권력투쟁 끝에 노일전쟁으로 일본 천하로 통일되기까지는 참 소란스럽기만 했었을터
하나의 정권이 유지되는 것, 이것도 organic 과정이려니
참 탈도많고 위태스럽다 싶다
그런 중에 정권 유지를 위해, 안동김씨는 그 얼마나 포탈하였고, 뒤를 이어 흥선군은 또 어땟을가?
고부 민란으로 촉발된 동학혁명, 혁명까지도 못갔지 싶은데
(오늘 비교적 강하게 비판적인 논조로 써본다!!)
이런 중에, 춘원의 그 오랜 기간 노력이 끝내 1944년에 변절의 글, speech까지 나오는데, 그 오랜 세월, 그 누가 누굴 탓하랴 싶기도 하다
문제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민생 민초들의 삶이 정말로 정권유지를 위해 철저하게 무시되고, 탄압되고 있는 상황
오르테가의 "대중의 반역", 1936, 이 책은 또다른 획기를 보여준다
그렇다, 압제에 무력하기만 하던 대중이 이제는 역사의 중심에 서서, 참여하면서,
그 변덕스런 여론이 정권을 이끌고 있으니, 이또한 획기인 듯 싶다
한편 현대 대중의 반역이 주류인 상황에서, 하다못해 테레비 드라마에서도 여론의 중요성을 그리도 주장하는데, 그 여론이란게 참 허접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모세가 산에 올라 십계명 돌판을 가져오는 동안, 바로 그 사이에 여론이 일어 황소를 숭배하고 춤추는 장면, 그래서 모세는 그네들을 전부 몰살시키게 되는데, 이 또한 한편으론 여론의 흐름은 어쩜 자연스럽다고 봐야 하나, 그들은 주님의 뜻, 하느님의 계명과 일치하지 않는ㅇ 경향이 있다
차라리, 대중이 중심이 되는게, 차라리 낳을지 모르겠다
미국도 연방대법관은 종신이면서 7명인가 9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걸로 안다
대통령보다 더 선호된다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연방대법관, 이들은 당연히 aristocracy에 가까울 것이다. 대중의 반역과는 다른 움직임이지만
어쨋든 대중의 흐름을 소화하는 의회와 정부, 그네들을 견제할 세력으로서 이들이 있음으로써 세상은 민초들의 집단적 학살이나 초근목피로 내몰리는 상황은 저지할 수 잇다면, better than 상황이리라 싶다
오늘 오전에는 "법으로 읽는 유럽사" 읽다보니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바로 전 1800년대 나폴레옹 등의 민법 civil law 제정 움직임 등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의 원형이 이태리 지역에서 500년전, 그러니까 1200년대에 잇었다는 기술을 보면서 보게 된 내용이다
수박겉핥기에 불과한거겠지만, 일단 내 머리 속에 인지된 내용을 재정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