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9. 08:59ㆍ카테고리 없음
아상 인상 중생상, 이런 용어에 대한 주의가 불교교리에는 있다고 한다. 금강경(번쩍 깨달음?)에서
굳이 아상 인상 중생상 등으로 개념구분하면서 거리를 두지 말고 그 모든게 하나이니, 유연하게 응하라는내용 같은데 불현듯 성서를 읽다보면 (보통 아침 일어나서 한두장 보는게 고작이긴 해도) 좀 내용이 예쁘지 않은게 보통이다. 더러는 구질해 보이기도 하고, 저다지 그리도 인지상정적일까 싶을 정도로, 탐심이 드러난다 아무리 후대에 미화하더라도, 문맥상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성서가 특히 서구를 중심으로 끼친 영향은 지대할 것이다 싶다. 반면 동양은 사서삼경을 비롯해서 (그러고 보니, 시경과 서경은 조금은 예외인 듯 싶지만) 불교 교리도 상당히 연역적이고, 논리적이라 보여진다 그래서 읽을때 현재의 내 입장에서는 더 편하다 싶다
하지만, 실제와 비교한다면,
이슈를 접하고 집단 해결과정에서 본다면
결국은 "협상"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고, 그러려면 협상 상대방들이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영속체가 아닐 것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싶다. 그게 논리적으로는 연기론에 의한 설명일텐데, 그렇다면 연기론은 매우 귀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기론의 핵심은 지금 주어진 시공간에서 상대방들과의 만남은 다들 어떤 조건지워진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인연이라서, 그 관계나 관계상대방들이 '영원'한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협상은 바로 그 조건
condition ; con + speak?
어쨋든, 함께 이야기 하는것, 그것이 조건이라면
이런 유연한 마음이 정말 필요하고
겸손이란 덕목이 정말 필요할 것이다
뱀처럼 유연하고 다른 의견을 아우르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