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의 생애와 사상, 2016, 김형식

2021. 1. 17. 11:51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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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할줄 알았던 위인,

위인전, 평전 등이 참 무게감없이 다가오는 시절이지만,

이 양반은 실천의 족적으로 정말 본이 되는 분을도 기억된다

이번에 평전을 보게 되면서,

그러겠거니 싶으 것도 있고, 역시라는 측면 두가지가 동시에 느껴진다.

 

9살에 미국으로 유학

30대 두 자매와 같이 지내면서, 열심히 살면서 적응에는 성공

비교적 잘 자리잡았지만, 그러느라고 거의 미국화되신다

 

얼추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금번 평전을 통해서 알게 된거, 새로운 눈이 뜨인건

- 재미교포, 내지는 미국적의 한국인 2세들

그네들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생각의 구조는 미국이라

예전 같이 일하던 그 많던 Korean-American들이 생각난다

 

마음의 국적을 결정하는 기간은 초등~중고 시절이 결정적인 모양이다 싶다

유일한 박사는 9살에 건너갔으니, 한국말을 거의 잊고 사실상 미국적 마음을 가지는게 당연한 듯

 

이점에서, 이승만과는 다른 것 같다

서재필에 대한 상호존경은 유일한쪽이 컸지만,

결국 남한의 과도정부를 거쳐서 제 1공화국이 설정되기에는 이승만이 주도하게 된다

이점에서는 마음 속은 한국적인 사람들이 또하나의 그룹이 되는 것 같다 싶다

그래서, 아마도 이승만 정권 시절, 한국에 있는게 불편해서 미국과 도쿄에서 원격 지휘를 했던 것으로 알게되다

 

- 2번째로, 같은 맥락이긴 한데

유일선, 유일한 아들과 호미리 부인, 그 두사람은 결국 유일한 회장의 장례식장에 없었는지 싶다

왜냐하면 전혀 언급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유재라, 딸이 유일하게 유한공전 동산을 물려받되, 그것도 잘 건사하라고만 권고받을 뿐이고

본인의 전 재산은 재단에 기부하게 된다

직전에 3년정도 실질적인 후계자로 경영에 있었던 유일선 부사장을 해임하면서

회사법인은 내 아들보다는 제 3자, 더 적격인자에게 맡기겠다는 취지로

그렇게 경영구도를 넘기면서

사후 재산에 대한 처리 방침이 정해지는데

그럴때, 미국으로 건너간 부인 호미리와 아들 유일선과는 의논이 어떻게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없는걸 보면

아마도 이런 정황도 지금은 칭찬 일색이기만 한 사회환원의 모습에 대한 한 요인도 될 수 있겠다 싶다

 

내세워지는 이유는, 아들 유부사장의 처신이 너무나 미국식이라서 안되겠다 싶어서 해임했다고 하는데

유한킴벌리 등을 공격적으로 진출했떤걸 감안하면 경영판단력이 없었던건 아닌 것 같고

의사로서 서대문병원 및 세브란스에서 많은 활약을 하던 호미리 여사도 대화가 아주 안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다 이야기되기에는 어려운 그런 측면들도 많았다 싶다

 

 

- 세번째로, 유한양행의 성장과정은 어쩌면 경방(경성방직)과도 참 유사하다 싶다

어쨋든 북한쪽은 중국 등에 가깝고

남한쪽은 일본이나, 여기 유일한 회장님 경우에는 평양출신이지만 미국으로 연결되는 등

미국쪽에 간 경우에는 꽤나 오랜 기간 체류되면서, 한국과의 연결고리가 얕아지는 것 같다는 느낌은 드는데

여기 경방은 한국과 일본의 연결고리에서

특히나 만주국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업고리를 형성했던 점

 

이점에서는 유한양행도, 분야가 달라서 그렇지 거의 비슷하다 싶다

역시 한반도만을 대상으로 한 기업보다는 만주국으로 연결된 꽤나 큰 시장이 필요한 것 같아보인다

그런데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성쇠가 이어지는 것이라

 

** 제일 중요한 것일진대

주어진 환경 (시공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게 참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강화된다

유일한 회장님이 아주 다른 특별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당시에도 이런 저런 사람들이 미국, 그 머난먼 타향에 갔었을 거이고

그네들의 필라델피아 선언에서, 대표 연설자들의 이름이 단지 한국 성만 남아 있는 이가 오히려 더 많았고

이는 오히려 한국말을 할줄 알면서 일부러 하지 않던 서재필씨를 대표하는데

그렇게 일부러 한국과의 연을 많이 희박화 시킨 이들이 많았었을 것 가은데

유일한 회장처럼, 다시 한국에 왔었고

이승만정권과 거리는 있었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한양행의 설립자였다는데서 그의 족적은 분명히 남는 것 같다

 

한가지 자동차에 대한 꿈은, 아마도 516을 통해서 

이후 강자로 부각하는 현대그룹에 넘겨준 것 같아 보인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시작은 다른 한두군데에서도 했던 것이구나 라는 새로운 지식을 추가한다

꽤나 큰 대표적 전후방연관산업에서 현대가 처음부터 시작했던것은 아니었구나 싶다

 

어쨋든 열심히 살면서

주어진 역할을 통해 아름답게 구현해 가는게 중요하다 싶다

 

그리고, 어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마저도 이렇게 다양할 수 있고

다각도로 이해될수도 있구나 싶은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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