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 15:24ㆍ카테고리 없음
어제 점심때까지만 해도, 좌절이었다
아이들이 나를 닮지 않았으면, 아예 다른 사람이기를 기원했고
2020년대 들어, 도저히 내 스타일로 세상살이가 힘들 것 같다고 느꼈다
2시경 귀가길에 받은 전화 연락 메모
카페 네트웍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보였고, 기뻣다만
마리아와 대화중에, 내 스타일의 녹슬음, 스스로에 드는 반감이 크다는 취지로 대화하다가, 잠을 청하려고 조엘 오스틴의 28분 설교를 틀었는데
마침 Uncommon, 이런 내용이다
요컨데 좁은문으로 가라는, 그리고 high standard로 살아가는게 부담스럽고 원망스럽게 생각하지 말라, 이게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는 역설적인 강론을 들으며
스스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느님이 하필, 이런 내용의 설교를 듣게 하는지, 마침 coincidentally
다소ㅛ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9시 미사에서, 오늘이 교황의 날임을 강론중에 알았고
베네긱토 265대 교황과 프란치스코 266대 교황, 두분의 스타일이 완전 반대였음
다른 정도를 넘어서
2시간여 넷플릭스의 영화를 감동스럽게 지켜봤다
베네딕토 스타일이 오히려 내게 더 어울렸다.
즐길줄 모르고, 그럴 엄두를 못내서, 책만 읽으며 살았던
그러면서 비서실장, 측근 주교의 부패에 대한 보고를 받았으면서도
어찌 할줄을 모르고, 흔들리던 시절
나는 실패했다는 고백을 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고
먼저 프란치스코의 고해성사를 듣고, 이를 사해주시고
다음엔 본인의 고해성사를 하고, 이를 사함 받는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중친화적인 활동들
그중에는 한국 방문을 포함해서 참 여러곳, 특히나 어려운 지역들 방문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스타일 다른 교황의 새로운 시대가 2013년부터 지금까지 10여년 이어진다
그런데 현 교황의 고해내용 중에, 당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로 인해 12년 이상을 고통스럽게 지냈던 시절, 당시 요리오, 힐릭스 신부 두사람에 대한 죄책감, 고통스런 기억들을 고해하는 내용에서
군부에 맞서서 죽음을 택하진 못했던 그 마음의 부담
12년 성상 이상의 고독한 시절들이 녹아났다
이어서 한국 김추기경의 1시간 20분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한국 군부독재 시절과 맞싸운 시절
상계동 철거 사건, 이후 장지동 철거투쟁
빈부격차와, 사회의 한계지역, 그 사람들에 대한 기댈 언덕 역할
명동성당 진입하려면, 제일먼저 만날 사람은 나고, 이어서 신부들
더 이어서는 수녀들을 밟고 난 뒤에야 학생들을 만날 것이라는 오래도록 기억되는 절규, 그로 인해 명동성당의 시대적 역할을 해낸 이야기
==================
경영학과 철학의 정반대 성향은, 사람들 우르르 모인곳, 앞으로 모일곳을 지향하는게 경영학적 지향이라면, 그런 조짐만 있으면 아예 발길 자체를 하지 않는 조용한 스타일의 철학의 길
마리아 표현대로, 피천득선생의 피자 돌림, 회피, 도피
그런가?
난 아마도 평생 이런 회피와 도피의 길을 가고 있는건 아닌가?
직접 맞닫아서 죽음으로 조기에 결판난 적도 없거니와
아예 선제적으로 물리적 충돌은 피해왔건만
그러다 보니, 자꾸만 내 입지는 줄어들고, 위축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의 소위 민주화된 사회경제시스템에 만족하는것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고 모택동의 문화혁명의 길도 아니다. 이건 더 아닌게, 그나마 아무리 빈부격차가 심해도 자유가 강요된 평등, 모델화된 길을 억지로 가는것보다는 낳을 것이다
물론 생산영역보다는 분배영역에 더 관심이 있는 건 맞다, 그래서 성향은 사회주의에 더 가깝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억압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돈의 가치가 난무하고, 온통 돈돈돈 하는 풍토에도 거의 완전한 이방인인 입장이니,
정말 오도 가도 못하겠다만
내가 지냈던 3반세기의 사회생활, 남부럽지는 않았다만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힘든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물러서서만 있을수 없다는 입장이다만
오늘, 다시금 돌아보자
김추기경님은, 약관 44세에 (1964년? 마산교구장에 착좌하셨고), 이어서 1968년에는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한국을 대표하게 되셨고
그 1년뒤에 추기경으로 임명되면서 당시 최연소 추기경의 반열에 들어서셨는데
이는 어쩌면, 당시 교황청 입장에서 볼때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결정에 부합되는 상대적으로 젊은 사제를 찾았던 분위기에 맞춤이었던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전에 1930년대 소신학교부터 시작한 사제되는 길, 여기를 지도하던 연로하신 신부님들의 하이어라키, 오랜 기간 일제시대라는 섞임도 있었다면
로마에서는 1960년대 중반에 독일 유학을 했던,
그리고 1940~1944 일본 조치대 유학을 했던 김추기경님이 보다 더 적합했을 것
이와같은 시대적 적합성에 맞춤 추기경님이셨을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처음으로 비유럽 교황이 되셨다면,
그런데, 그분이 시대적 상황에, 요한바오로 2세 뒤를 이어서 중요한 틀을 남기신다면, 그렇지만 이분도 아르헨 군부독재 시절 온건파로 분류되셨던 시절이 있었던 걸
돌아보면, 세상에 1+1=2라는 두부 가르듯한 기준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나 적절한 변화, 타협은 불가피할 것 같다
다만, 최적의 51%를 찾는달까? 그것이 본인이 시대적 소명 속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구현하고 형성하는 길을 개척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74세에 은퇴하신 뒤에(1998년), 혜화동에서 쉬시면서 다시 10여년을 더 지내시고, 두 눈은 기증하시면서 연명치료 없이 1922년~2009년 88세의 생을 마감하시니, 일견 부럽고, 역시 지향점의 역할을 하셨구나 싶다
--------------------
나도 한번 생각해보자
직장생활 35년을 마무리는 했고, 아직 실업급여 타기 위해서라도 더 찾아는 보겠지만, 그리고 알바 비슷한 활동도 하겠지만
엄연한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데
부모님 세대, 쉽지 않았고
동일 세대, 형제자매 등의 관계도 여의치 않았는데
이제 아이들 차세대 문제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학 스타일, 철학자 스타일을 굳이 따질 것 있을까
당면 과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그러면서, 이제는 정망 성숙한 차원에서 임해보자 싶다
시대의 소명, 이 또한 정면으로 대응해보면서
시간은 의외로 넉넉하고
여건도 만들기 나름으로 있을터
high standard, 굳이 스스로 무너뜨리지 말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게 맞는 스타일을 형성하고 구현해 나가자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