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30. 21:50ㆍ책 읽기 영화보기 등
예전에 넥서스 간련해서 한번 올려봤다만
이번에 제대로 다 읽고는 다른 측면에서
다소 엉뚱하게도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아니 이야기를 잘 엮어낸다는 측면에서
유발 노아 하라리에 대한 공감과 부러움을 느끼며
또한 성균관대 생물학과 출신인 역자 김명주씨, 이렇게 잘 번역할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취지에서 올려본다

1976년생 이스라엘 사람으로
물론 그 아내에 대해, 천재적인 사람으로 극찬하는 남편으로서
사피엔스쉽을 설립 운영하면서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하루에 두시간씩 명상하고
연간 행사로 한달씩은 수행하면서 침묵을 지키는
어쩌면 가장 비IT적이고 비AI같은 사람의 생활을 하면서
그래서 가능한가? 먼발치에서 보는 사람처럼 AI에 대해 쓰고 있ㄷ
지금까지의 허구(만들어진 이야기, 해석ㅚ는 내레이티브)등은 그저 연결의 장치역할에 머물렀다면, 새로운 컴푸터 지배의 AI는 정보의 구성과 형성의 참여자로서
존재와 기능이기에,
자정장치가 없다면, 그게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정말 두렵다는 이야기
핵무기 등에 대한 통제에 대해 세계적으로 의논과 협의가 있는 것처러 AI에 대해서도 뭔가 통제장치, 지혜로운 인간의 협의체에서 감시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결론을 내고 있다
정보의 속성은, 진실과 질서의 균형이라는 추에서, 자칫 질서유지에 더 무게를 둘 수 있기에, 지금 뿌려지는 씨앗들, AI의 두뇌화 정경화 과정에 제대로되지 않은 것들이 뿌리내려진다면, 그야말로 두렵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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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10개 이상은 블로그에 글올리고 싶은 충동도 있어선가
아까 간신히 10개를 만들었는데
지금 11번째 글은 그야말로 자연스레 우러나온 것이다 싶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내용이 아니라
역자가 ㅈ적하듯이, 그야말로 이렇게 흥미있고 단순하면서도, 와닿게 해주는 사람으로 유발 하랄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라는 것에서 오늘의 블로깅이 초래되었다
내 스스로도 좀 놀란다. 그동안 표현보다는 알맹이에 치중하던, 거의 일방적으로 그러던 성향에서, 오늘처럼 표현력이랄까
이야기 구성하기, 내레이티브, 허구의 설득력 냊는 무의식적 사회형성력에 대해 진한 느낌이 들면서
나도 이제부터는 좀 표현에 지향을 둬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
사실 블로그에 올린 글이 오천개가 넘는데
아무리 대부분이 비공개 글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작년부터는 광고 수입이라도 얻고자 했지만
칸트 헤겔 고집하는 식으로에서인가
6달러 + 2천원 정도가 총 수입이니,
이것 참 무안하다 싶다
얼마나 광고수입과는 거리가 먼 행동인가?
그러면서 저기 피상적인 사람들의 돈벌이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세태에대한 비난도 보태면서
그런데 불현듯, 결국 하라리처럼 단순하게
그러면서도 잘 얘기해낼 수 잇다는 것
조지오웰의 1984년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신세계를 구분할 줄 안다면
더 깊은 지식구현이 있다면, 단순하고도 구성지게
인기도 얻으면서 지낼 수 잇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6월 블로그 11개째 올린다
그러려면 더욱 생각하고, 읽은 내용의 소화에 한층 더 신경써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싶다. 참 늦은 나이에 늦게서야 깨닫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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