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장례식장, 비원-피천득

2024. 3. 21. 17:44생각나기

반응형
 
 

엇그제 아마 처음인것 같다. 서울대 장례식장. 분당병원이나 보라매 병원에는 갔었던 것 같은데, 본관 장례식장은. 대학 동문, good guy 이름 들어 무난한 동문 부친상으로 낮에 들렀다. 드물게 덕수상고를 나온 동문으로, 서울 외곽성 둘레길 좋아하던 친구고, 나주 소재 한전 소개를 부탁했더니 재경 담당자를 소개받았고. 예전 현대증권에도 인연의 끈을 맺어주려던 친구. 생각해보면 이래 저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좋은 일 많이 하는 친구라. 불현듯 그때 그 회사 은행 애널리스트가 지금은 전북은행장으로 있으니, 참 세상이 좁기도 하다. 아마도 은행권에서는 가장 선도적으로 움직이는 기관. 그리고 또 생각하는 사람이 태정, 예전 쟈딘플레밍 선임자. 그래 한가닥 하던 분들이다. 다만 한쪽에 마비가 오면서 은퇴했던 업계 선배인셈.

정작 문상은 조금 늦은 점심시간에 들러서, 조우한 동창과 같이 일찍 나왔다. 이제 상당히 의례화된 문상 문화인지라

그리고, 한번 실행해보려고 했던 비원 산책을 결행했다. 바로 길 건너에 붙어 있으니. 비원은 일단 피천득 선생님을 생각하게 한다. 비오는날, 그러니까 얼마나 호젓하게 비원을 산책하셨겠나 싶은데

여기를 초등학교 소풍때 한두번 왔었을 것이고, 거의 아무 기억도 안난다

이후에 그 창경원이 이런 저런 연유로 창경궁으로 바뀌고 했던것도 잘 모른다

다만, 야경 벚꽃 구경삼아, 아마도 대학 시절에 한번 또 들렀을테니

그리고 처음이라

그래서 입장료가 있는 것도 몰랐다. 1천원이었다

그리고 들어간 창경궁, 5만평 정도 된다고 한다. 창덕궁도 그렇고, 또한 비원도 그렇다고 하니, 아마도 서울 지역에 근 15만평 가까운 자연물 가까운게 있는셈인데

그중 4만평 이상은 숲지역이라, 일반인 접근을 차단시키는 것 같다만

창경궁에서 당연히 비원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때 알았다. 창덕궁으로 진입하려면 다시 3천원 입장료가 필요하고, 비원으로 다시 또 들어가려면 5천원 입장료가 별도로 드는데, 더 문제는 80분 정도를 안내원을 따라 단체로 통제된 관람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서울사람이, 여기를 일반 외국인 관광객과 같이 안내 설명도 들으면서 단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통제되면서 다녀냐 하다니. 당연히 예전 피천득 선생님 시절에도 그렇지 않았을터.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관광객들로 인근 사람들도 몸살을 앓거니와, 비원도 손상 많이 당했단다

 

어쨋든 비원 입장을 3시반에 했는데, 지도를 보니까 낙선재가 있어서, 예전 이방자여사가 생각나고 순종, 조선 최후의 왕 생각도 나서 봤더니, 낙선재는 비원과 달리 자유개방이라서, 창덕궁 입장객은 언제든지 관람이 가능하단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비원을 다 보고 나서, 돈화문쪽으로 나가지 않고, 다시 창경궁 쪽으로 이동해서 낙선재를 보면서, 잠시 쉬면서, 햇볕 드는 곳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는데, 느낌에 영국인 여성 같은 이가 약간 옆 툇마루 내 옆자리쪽에서 자리 잡는다. 난 한참 쉬었다.

 

예전 창경원, 아직도 식물원은 남아 있고, 1900년 초 건립될때만해도 동양 최대규모의 식물원이었다고 하는, 지금은 아담해 보이는 하얀색 건물, 당연히 바람 많이 부는 쌀쌀한 봄날씨에 그 식물원에서 신경림씨의 시인을 찾아서를 몇분 보면서 독서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신석정, 김종삼, 신동엽씨 3분 정도를 읽은 것 같다만, 신경림 시인 본인도 1935년생임을 이제서야 알았다.

 

피천득 산책로, 인연을 넘어서

저기 보이는 하얀 색의 현대건설 빌딩, 거기에 현대자동차가 있었고 내가 일주일 정도 근무했던 기억으로 계동 추억을 잠시 되새겨본다

만약 현대자동차 근무기록까지 넣는다면 이동했더 직장의 수가 스무개까지도 되겟지만, 그때는 국민연금도 아직 개시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지금 사회보험 기록에서는 단 3개월 근무도 모두 잡히는 것까지 다하면 이동했던 직장이 어지롭다. 자주 이동했던 기록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고단한 생계형의 모습으로 치부하자 싶다

얼마만에 방문해본 건지, 그야말로 춘래불사춘의 날씨에,

아마도 중국과 일본 관관객이 많아 보이고, 영미권에서도 있는것 보면서

물론 우리 회사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동남아 권도 보이고, 이제 한국의 관광객 내방도 대단해진 것 같은 것 느껴진다. 이네들 이번에 한번 보면 또 언제 볼 것일까? 10여차례 이상 방문했던 싱가폴에서 만났었던 중국여성도 잠시 상기된다. 연차를 두고 두번이나 만날 수 잇었지만 늘상 느꼈던 감정은 에전에 일제시대에 일본군으로 동원되었던 일꾼으로 그랫던 몇년간 이쪽에서 지냈던 우리네 조상분들의 애환도 감히 한번 정도는 간접 경험했달까.

이제 80억명이라는 지구의 인구, 그네들의 일정 시점에서 한공간에서 스쳐지나는 인연들, 그것이 주는 잔잔한 느낌이 아직 있는 걸 보면, 그래 친절하게 자기 지도를 보여줬던 아마도 인도네시아쪽 사람 같은데, 그런 친절함에 따스함을 느꼈겠지만.

참 몇해가 압축적으로 상기되는 관광인지. 그래 이런 공간에서 시간흐름이 압축적으로 느껴지는 것, 그것이 아마도 관광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