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5. 08:47ㆍ책 읽기 영화보기 등
소위 [철학치료학]
철학과 긴장관계로 일관되었다면, 금번을 계기로 철학을 통한 현실개척의 계기로 삼을만한 계기
1946년생 이광래 교수 등 강원대 철학과교수님 그룹 작성
그동안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신선하고 참해 보이신다
특히, 최근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의사들의 집단 반발 움직임 시기에 이책에서 diagnosis and statistical manual 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 같다
우리때는 의대, 잘 안가려고 했다. 의사들을 보면서 좀 측은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왜냐하면 쉴틈없이 진찰받으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전 학생회관 내에 있던 의사는 우리들 학생들 진찰과정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나가서 한대 필 시간조차 없어 보이던게 안되보였었다
그런데 이제 변호사 회계사 연봉이 1억원을 하회하는데, 유독 의사들만 연봉 3억원 이상이라면, 당연히 시장의 논리상 증원을 통한 공급이 더 높아져야 정상이다
의료행위가 무슨 신이 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말 그대로 매뉴얼이고, 통계적 뒷받침 위에서 시술, 수술되는 행위들일터, 마치 당신들은 왕권신수설의 사람들이라는 시대착오적 사고에 빠지면 안될 것이다. 그럴 경우에 이렇듯 강남아줌마들의, 심지어 강남 할배들의 의대고집현상은 지속될 것인데, 이 얼마나 abnormal한 상황인가 싶다. 원래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의료행위는 기본적으로 봉사정신에서 우러나온다고 본다. 그러니까 슈바이처가 있었던 것인데반성적 사색과 철학적 반성은 실패나 상실로 생기는 우울함이나 슬픔 나아가 좌절감이나 절망감에서 빠져나오는 출구이자 마음치유와 마음성형의 입구이다
DSM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저주 ; 언제부터 의료계에서 규정하는 병의 종류와 기술에 언론 및 상업진의 선동에 의해 우리들은 끌려다닌다. 궁극적으로 마음은 철하걱으로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세로토닌 등 의학 용어가 언제부턴가 일상화되었는데, 한번 다시 생각해보자.
스스로 예방하고 극복해야하고, 그래야 되는게 정상인데, 마치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무조건 병원에서 유도분만등을 하는 것처럼, 웬만하면 병원에서 규정한 내용들에 대응하려고 하는데, 이건 병의원, 특히나 대형 제약회사가 바라는 바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성리학처럼, 이황 같은 분이 오히려 주자학의 극단적인 완성도를 높이려고 밖의 모든 돌아가는 모습에는 귀막고 눈감는 느낌까지 줄 정도로 무심하면서 본인 자신의 인격수양만 하면 모든 경세제민도 될 거라는 어쩌면 비현ㅌ실적인 기대, 이런 것도 극복해야 하고
한편, 불교의 8정도 같은 좋은 실천 자세를 적극 praxis로 구현하여, 그야말로 임상ㅇ의학에 걸맞는 임상철학 clinical philosophy를 구현하자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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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접근에는 일본의 [고학]에 대한 검토를 기반으로하여, 한국에는 실학을 개관한다. 일본의 고학은 주자학이 사서삼경중에서 삼경은 지나치면서 공맹 등의 사서에만 집중했고, 더욱이 송대의 주희 등이 집주를 하면서 중국의 사상을 형성해나갔는데, 이게 원래 중국 유학의 뜻을 왜곡시킨 것 아닌가라는 의심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옛것, 원래대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내걸고, 그래서 고학을 내걸고, 그동안 무시되었던 시경 서경 역경의 3경을 잘 보자는 내용인데, 결국은 현실지향성을 더욱 높인 것. 이때부터 한국과 일본이 갈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국은 이황 등의 영향력이 워낙 높아서, 영남학파 주도하의 더욱 개인 내부에 치중하고 이기에 대한 분석에만 치중한 반면, 일본은 1600년대부터 일찌기 현실지향성을 크게 높이면서 이후 1700년 전후, 일본의 본격적인 세계내 참여를 높이고 아시아의 산업혁명 등을 성사시킨 것 같다
결론적으로 철학은 자기 혼자만의 수양만으로 세계내 존재의 완성도를 높이는데는 한계가 있으니, 실천praxis 높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을 치료학으로 지향성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이런 점에서 쇼펜하워는 칸트/헤겔에 가려져서 기껏 니체 등에 의해서만 부분적으로 칭찬받던 철학자엿는데, 그이의 행복론, 인생론 등이 근래 오히려 MZ세대에 소구한다고 하는데, 쇼펜하워의 [의지와 표상] 이 개념이 보다 더 현실적합성이 크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실제로 쇼펜하워는 철학자로서 연금생활자로서 여유있게 살았다. 철학자 하면 궁핍하고 희생의 자세 같은 걸로 연상되는 피상적인 모습을 극복했던 사람이 사실은 쇼펜하워 아니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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