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3. 20:59ㆍ책 읽기 영화보기 등
내노비는 내수사와 각 궁 소속의 노비, 시노비는 중앙관청 소속의 노비. 1801년에 약 6만 6천명의 노비가 혁파되어, 양인으로
숙영정조의 150여년간의 조선 후기 안정기 이후, 1800년이 되면서
순조가 등극한 이래 외척, 세도정치로 한국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했던 것으로 역사를 크게는 이해했었다
1800년대, 미국은 남북전쟁을 거치면서까지, 공업발전과 서부개척이 활발해지면서 1874년 경제공황까지 격을 정도로 성장했고
유렵도 1860년에 공산당선언 책자가 나올 정도로 시장경제가 무르익어가던 시절
한국은 자체 정권 유지를 위한 천주교박해만 해대고
어쩜 볼썽사납고, 아쉬운 시절로 대비되었었다
특히 일본은 1800년대 치고 올라가, 아시아 선두주자로 자리잡았던 것,
그래서 결국 한국은 일본에 의해 1894년 갑오경장을 통한 노비제 폐지까지 갔고
한일합방을 통해 일본적 지배구조가 성립되엇던 것으로 이해하느넫
우리 역사, 1801년 순조 재위 시작하자마자 실시되었던
내시노비 혁파는 참 위대한 발걸음이긴 했었던 것 같다
즉, 지향이나 취지는 참 좋았던 정책을 실시했었으나
아마도 사회경제 생산력의 기반, 내지는 잉여생산물 제공기반인 노비는 갈수록
특히 1600년대 두번의 전란을 통해 노비 축소가 심각해지고
경작가능 전답도 줄다보니
그런중에, 취지는 좋지만 노비혁파를 실시하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가렴주구가 더 촉진되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예전보다는 파이가 크게 줄어든 상태에서
지방은 수령과 지방토착세력의 양민을 대상으로한 환곡, 전정, 군역 등을 통한 착취로, 한편 중앙의 세도정치는
안동김씨를 넘어서 **김씨하면서 서울거주 세력문벌로 자리잡게 되니
국민경제, 국가체제의 안정은 크게 저하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럴때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1801년 세계적인 태동,준동의 시기에 임해서 한국도 좋은 취지의 뭔가는 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뒤이어 철종 시절도 중앙정권의 안정성도 떨어지는 과정에 안동김씨로부터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되찾아오는 정권이양의 모습
공히 자기 세력 안정에만 골몰했던 아쉬움은 있되
이때 그네들이 주장하는 양이척 등의 정책, 그 취지는 어느정도 인정할건 해야겠다
천주교도 양반보다는 서민쪽에 많이 수용되었던 것, 다 이유가 있엇던 것 같고
해서, 역사를 볼때, 일방적인 무시하기는 조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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