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심리, 폴 존슨, 1952

2024. 10. 10. 20:56책 읽기 영화보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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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다시, 아마도 3독인가?

읽는데 아침 기상과 더불어 읽을정도로 애정을 담고 있다

궁극적 존재에 대한 인격적 헌신, 인간생활의 확장 관계에 창의적인 잠재성을 제공한다고 믿어지는 궁극적 존재에 대해

유한한 개인이, 무한한 가능성에 대화관계를 요청하고

어쩌면 고민이 산재한 중생의 삶에서 지향과 통합을 요청하는 종교생활

키에르케고르처럼, 단독자로서 신에게 오로지 헌신하기 위해, 약혼자 레기나와 관계도 깨는 행위도 있고

마틴 부버처럼, 내가 너를 찾는 행위로 이해하면서 상호인격적 관계구축에 초점을 두는 접근방식이 있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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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쨋든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관심은

내 삶의 지평을 당장 급한것에만 얽메이지 않고

끼니 때우는데만

그리고 짝짓기에만 신경쓰는데 그치지 않고

뭔가 큰 그림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으려는 지향이 종교생활일텐데

오늘 듣게된 물질과 생명의 탄생

산소와 전자의 연결을 통한 활동성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 생명현상의 유지

생명체의 특징이라면

자연은 아무런 의미를 제공하지 않는다딱히 어떤 의미 있는게 아니라는

자크 모노, 에전에 읽으면서 썰렁한 느낌을 가지면서 더 읽지는 않게 되는 "우연과 필연"이란 책도 그렇거니와

원자론을 주장한,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유추, 추론 가능하겠지만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이나

그러니, 그냥 맘 편하게, 행복하게 재밋게 살자는 헤도니즘

에피큐로스의 헤도니즘도 참 오해 많이받는 책이겠지만

바라는것 자체를 줄이는, 즉 분모 줄이기의 철학이 헤도니즘(쾌락주의)인데, 이를 분모/분자 이야기 없이 단지 분자를 그냥 그대로 섭취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다소는 몰지각한 사람들

아니,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인지상정일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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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욱,

자꾸 생각되는건,

하느님의 지혜를 통해서 눈이 열리면

얼추 어려워 보이는, 길이 안 보이는 현상 깊이 너머에도

혜안이 열릴 수 있다는것

그래서 이를 행해본, 기적으로 연결되는 원리의 실행이

사실은 있는데

얼핏 얄팍하게 intuitive 추론으로 그만 접어버리는 내 삶의 궤적을 다시금

반성하면서 돌파의 개연성을 찾고자 한다

인지상정

먹고 싸는, metabolism

특히 싸는 과정에서 온갖 냄새 나는 인간관계 중생의 한 복판에서

이를 눈감고

마치 타조가 머리를 모래에 쳐박고 모른척 사는건

참 어리석음의 극치이거니와

이런 인지상정, 중생의 삶에서 눈을 제대로 뜨고 대면하면서

뭔가 새로운 창조를 지향하는

그래서 그만큼 내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아름답게 기획하고 만들어가는게 아름다운 삶이라고

그렇게 다짐하고 깨닫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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