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정치학적 해석학, 몰트만, 1968

2024. 10. 10. 20:06책 읽기 영화보기 등

728x90
반응형
 

 

1986년에 간행된, 휘문출판사의 세계대사상전집의 한권

 

앞서 마틴부버의 나와 너, 

테이야르 샤르댕의 디바인 밀리외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이 있고

그중 앞서 2개는 봤고

특히 부담스러워서 못보던게 몰트만이었는데

 

10월 10일에 다 읽으면서

- 앞서의 논문들은 독일풍이 절절해서인지 역시 어려웠다, 인내로 읽는 기분

- 마물 정치하적 해석ㅎㄱ; 실존사와 세계사

   이건 이해도 상대적으로 쉬웠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더불어, 독서중에 느끼는 것들

- 세로로 된 책을 지금 2020년에 읽는게 어떤건지?

   너무 out of date 아니지?

- 더욱 1968년에 씌어진건, 햇수로 52년전 상황이니

모시고 았는분ㅇ 68학번 선배님이시고 

그때가 21세기 자본주의 최성기의 기간을 거치면서

경제성장만이 다는 아니구나 하면서 깊은 반성을 하던 시간

 

그래서 시장도, 두번의 유가폭등 상황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연결되는 극단적 상황이었는데

지금으로보면, 경제 대순환의 다음 단계 같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것까지 연결될 수 있는 긍정성은 잇어보인다

===========================================

<요약>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현재는 미래에 대한 종말론적인 실존으로 연결될 수 있고

특히나, 나 혼자만의 실존이 아니라 정치경제 사회적으로 함께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젼을 믿을 수 있고

바라볼 수 있고, 지향할 수 있게 된다는 것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모습은

냐약하게 허무에 빠지는 모습도 아닐 것이고; 형이상학적인 취약성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fewer growth ever 지속도 아닐 것인게, 해방신학적 색채가 짙고

물론, 예전 글귀 사문화된 경전에 얽메이는 것도 당연히 아니고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 나혼자만의 고민이나 고생만이 아니고

-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정치경제학적 고난의 모습에서

그냥 좌절하지 말고

거기에 참여해서 못박히신 예수님이 부활핫ㄴ데서 우리의 희망의 신학이 가능하다는 것

 

불교의 사성제는 고집멸도의 법칙을 잘 깨닫고 아라한이 되면

다시는 태어나는 고집의 순환을 깨고 태어나지 않는 영원학 복락을 누린다고 하는 반면에

여기 몰트만의 신학은 

태어나서, 함께 고난에 동참하고,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 이루는데 각각의 고유한 기여, 모양을 이루자는 주장인 듯 싶다

 

======================

희망의 성례전, 이걸 우리는 교회 안에서 찾아야 한다. 하느님이 그들 가운데 계실 것이요,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가난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앞을 향한 도약은 오히려 자유를 포기하고 독재를 초래할 수 있다

경제적 발전이 인간의 자유 및 사회적 조화와 마찰을 일읔고 있다

하느님 자신의 임재에 대한 기다림이 결여된다면 오류에 ㅃ지고 말 것

만일 그리스동ㄴㅇ 단지 사회적 양심 때문에 정치저그로 참여한다면 ㅇ는 잘못이다

죄와 공허해서 가는 삶에 대처하여 아무런 희망도 없다면 

   다시 말해 하느님 자신의오심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다면 모든 것은 옣속상태에 있는 것을 약간 개선하는데 불과할뿐

이 예속상태를 벗어나서 저 자유의 나라로 우리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루터는 인간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죄 죽음 악마의 순서로 열거하엿다

라이프니쯔는 이것을 철학적으로 표현하여, 도덕적 악, 자연적 악, 형ㅇ상학적 악이라고 말하였다

19세기에는 인간 삶의 경제적 영역, 도덕적 영역 종교적 영역이 구분되엇다

따라서 악마, 허무라고 하는 형이상학적 악, 유한성의 고통으로 인한 종교적 고뇌 등, 

이런 것과 대립할 수 잇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면 인간 실존에 있어서 그 나머지의 것도 역시 별다른 가치를 갖지 못할 것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