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2, 2007, 한승원

2024. 11. 10. 11:11책 읽기 영화보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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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빌려온책

정신 없는 중에도 읽히는 책

그리고 마침 한강 노벨리스트의 아버지, 한승원씨 작품이기에 눈에 띠었다

 
  • 소재가 희소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추사는 역사 기록 등에 아마 그닥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 같아서이다. 한석봉과 떡자르기 같은 뭔가 민담 동화같은 정도에서, 추사는 추사체 같은 뭔가 더 있다는 것 정도 아닌가 싶었다
  • 다만, 근래 1800년대 천주교 박해와 관련해서, 추사가 오히려 풍양조씨 쪽에 있어, 천주교 박해에 더 심했던 것으로 보여, 살짝 느낌이 안 좋았지만, 그당시 세세한 역사 흐름을 보면서 관심이 생기긴 했었다
  •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추사는 원래 왕의 외척 쪽 사람으로, 결국 왕위를 위해 불가피하게 안동김씨 주도세력과는 대척적일 수 밖에 없었구나라는 구조적 상황 인식을 하게 되었다
  • 비록 앞의 1권을 보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당시의 정치경제 상황은 어느정도 느김이 있었는데, 분명한건 인물을 띠우려는 그런 의도라면 거기에는 동의할 수는 없다
  • 당시 시대풍속에서 본인이 직접 낳은 자식은 첩의 소생이라, 첩은 물론 그 아들도 서얼이라 해서, 추사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게 왜 이번에야 인지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신기했다. 그리고 추사 본인도 어린 시절에 서얼 출신인 박제가로부터 교육을 받아 보니까, 왕손 외척이지만, 북학파로 분류는 되어 있다
  • 그리고 제주도로 귀양가면서도 종들이 따라 다닌다. 정말 조선 시대 진짜 양반들은 대단했다 싶다. 집 이름도 따로 있고, 그리고 바로 그 집을 이어가기 위해, 오히려 양자를 들여서, 소위 사당을 이어가게 한다
  •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딱히 심각하게 존경심이 오를 정도의 순교적 느낌은 들지 않고, 다만 경학을 등한시 하고 면벽참선만 강조하면서 그러면서도 뭔가 속으로 잇속을 챙기는 당시의 불가 모습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보였고, 그러면서도 본인은 불가에 귀의하고 싶어 하나, 이 또한 사당을 지키기 위해 어쩔수 없이 타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현 상황에 심각한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균형감각으로 적응하시나, 그렇지만 경학등시의 풍조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 사고를 유지한다는게 따를만한 모범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싶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글씨를 쓰는 일 뿐이다

이하응이 추사를 찾아올 정도로, 결국 왕당파 쪽으로서, 간신히 안동김씨를 꺽지만, 그 댓가로 흥선대원군은 천주교 박해를 강화하는 것 같다, 모두가 본인들의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싶다

반가부좌에 기를 모으는데 문득 겨드랑이에 전율이; 당시 북학파는 이렇듯 호흡운동을 하는 경향

미혹과 미망; 이것이 인지상정이련가,

탐욕과 미망 속에 허덕이는자, 자취에 집착

중생은 제쳐놓고 부처만 위하고 따른다

비린내 구린내 코를 찌르는 나의 대지를 알고, 그 속에서 오묘한 길상의 신비로운 향기를 기운차게 그려야 하는데

가부좌한채, 텅 빔과 없음만 찾고, 경학을 등한시 하는 풍조에 대한 비판

경전에 무식한 선승들이란 사람.

경전공부를 통해 점차적으로 깨쳐야하는 점수와 참선을 통해 단박에 깨달음에 이른다는 돈오가 대립

진흥왕 순수비를 당대 풍양조씨 조인영과 추사가 같이 밝혀낸 모양

실사구시의 북학파 전통, 오히려 풍양조씨 세력에 있었던 모양이라

석가의 텅비어 이ㅆ음과태허의없음이나노장의선도나불교의선을체득한

진공묘유 멋을 동경하는 이는 소동파 동경

당시 북경에서 얻어온 붓과 먹, 그리고 중국의 시인들 도연명, 소동파 등이 이들 조선의 엘리트 층, 양반층의 벤치마크였던 모양이라

강을 건넌 사람이 타고 건너간 땟목을 아가워 버리지 못하고 지고 다니는것은 미련

선인들의 오천권 이상은 읽어야하고, 그 선인들이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자기의 비참한 운명과 싸우면서 명상하고 사유함으로써 얻은 스님들의 사리 같은 참 지혜를 얻어야 하는 것, 그것이 CLOUD에 있는 스님들의 사리 같은 지혜, 상공의 하늘은 그 사람 속의 하늘과 감응하게 되는 것

명필오서의 완성이 백칸이라 한다면, 99칸까지는 사람의 부단한 분투와 도전 같은 정진과 공력으로 이룰 수 있지만, 단 한 칸은 신성이 작용해야

내 집 지을 터를 텅 비운다음에, 확실한 빈터 조성한 뒤에

닳아져 못쓰게 되어버린 몽당 붓이 수백자루, 천재는 없고 신을 향한 도전, 지향만 있을뿐

성인의 말씀에 근거를 둔 것만을 바탕으로 해서 내가 옳다고 믿는 새 국면을 열어나가야. 온고지신, 실사구시의 정신

북한산의 무학대사비가 사실은 진흥왕 순수비였음을 이런 기풍으로 밝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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