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4. 15:59ㆍ책 읽기 영화보기 등
언제가 꼭 보고 싶었던 책
우리 안에 있는, 이이히만 성향, 관료주의
섬뜩 놀라지만, 그가 무려 6백만명의 유태인 학살 genocide 혐의로 사형에 쳐해지기가지하는
그렇지만 한나 아렌트 보기에, 그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을뿐이라는
the banality of veil, 악의 평범성, 이 한마디가 아이히만에 대해서는 더 잘 알려지다. 죄책감이나 혐오감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

The use of "Eichmann" as an archetype stems from Hannah Arendt's notion of the "banality of evil".[223] Arendt, a political theorist who reported on Eichmann's trial for The New Yorker, described Eichmann in her book Eichmann in Jerusalem as the embodiment of the "banality of evil", as she thought he appeared to have an ordinary personality, displaying neither guilt nor hatred.[6]
이어서, 1988년 책에서도 이런 기조가 발견된다
1988 book Justice, Not Vengeance, Wiesenthal said: "The world now understands the concept of 'desk murderer'. We know that one doesn't need to be fanatical, sadistic, or mentally ill to murder millions; that it is enough to be a loyal follower eager to do one's duty."[225] The term "little Eichmanns" became a pejorative term for bureaucrats charged with indirectly and systematically harming others.[226]
복수도 아니고 소위 "책상 살인"이 얼마든지 벌려질 수 있다는 지적
미치지 않아도, 사디스트 아니어도 수백만명을 살인할 수 있는바, 그가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데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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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나도 재판이란 과정에 현실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좀 알겠다만
이게 장난이 아니고, 단순한 로망 소설도 아닌건 분명한데
어쨋든 재판이 벌어지면 선고는 내려지게 되고, 그 사유를 적시하게 되는데
이때 사회심리적 이론에 근거해서 아이히만 같은 이를 면죄부주기도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제대로 검사의 기소 근거를 다 심리하고, 더불어 변호인의 반대신문을 다 심리하려니, 획일적인 답변은 나오지 않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히틀러 총통의 지휘하에, 그의 열정에 근거한 반유태주의, 반짚시, 반공산주의 사상에 동조하게 되는, 동조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
그걸로 모두 면죄부를 줄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분명히 아닌 것 같은데
예컨데 6백만명의 유대인이 죽었다고 하는데, 그때 유럽 각 지역의 유대인 지도자회의에서 돕지 않았다면, 아마도 절반 이상은 살았을 것이라는 취지의 사실도 또한 무시할 수 없는데, 그네들 유태인 지도자급의 모임들중에는 한명도 처벌 받은 사람이 없었다는 점.
이미 뉘렌부르크 재판에서 주요 장성급 이상은 아마도 사형 등의 선고가 있었으며,
여기 불과 중령에 불과한, 아이히만이 자칫 이후 재판과정에서는 희생양으로 몰릴 수 있었다면, 독일인 내에서도,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그때 상대적으로 아쉬움을 토로하던게 한나 아렌트 지성인의 이야기였고, 그러기에 오히려 유태인인 한나 아렌트가 한동안 유태인 집단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는 것도 또한 슬픈 사실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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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가지 교수로 재직했던 아이히만의 막내 아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또한 언제나 수미일관하게 그렇게 얘기한다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아이히만은 책임질만한 사유가 있다는 것이다.
his father's "following orders" argument excuses his actions and observes how his father's lack of remorse caused "difficult emotions" for the Eichmann family. Ricardo was a professor of archaeology at the German Archaeological Institute until 2020.[222]
하여간 이 책은, 머리를 좀 아프게 하는 지성인의 책임은 분명하다
당시 끌려다니고, 세상에 200키로 이상을 걷게 명령했던 아이히만의 조치는 분명 잘못한 것일 것이다.
그러기에 한나 지성인의 가장 큰 논지는,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재판에서 배울 수 잇는 교훈 일 것이다
무사유와 악의 묘한 상호연관성
결국 악마는 게으름이고 무사유, 그냥 끌려다니는 것인 것 도 같다
행정적 대학살의 원래 용어는 영국의제국주의에서 시자괴었ㄷ는 얘기도 잇다
히틀러의 대량학살, 원래 취지는 '치료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안락사를 허용함으로써 시작되었다는 것
그렇다고 단순한 기능인으로 행동했고, 그 기능은 다른 어느 누구에 의해도 마찬가지로 쉽게 수행될 수 있었다는 근거로 변명하기에는
어쨋든 이런 식으로 사유하도록, 생각하도록, 고민하도록 몰아가는 책이 한나 아렌트 지성인의 책인 것 같다
범죄의 성립에 죄의 의도가 중차대하다면, 사실 아이히만에게 그게 좀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는 지적도, sheer thoutlessness, 이런 순전한 무사유
마치 목표만 달성된다면, 과정은 무시되는 듯한 금번 이재명씨 재판에서도 그렇지만, 이런건 아닌 것 같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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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 so rapidly changing economy and society, 정신 없이 살아가게 되고
severe compettion에 내몰리는 삶의 현장에 있다보면
도데체 정의란게 뭔지 모르겠고
굳이 알고 싶지도
따지고 싶지도 않을때가 많겠으나
그러니 그저 한국의 아이돌, 걸그룹 같은 표피적인 프로그램에 시간을 보내고
plastic surgery로 세게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의술 문화
모두가 돈을 쫓는 이런 환경에서
굳이 정의란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론도 심각할 것이다
10억원을 받을 수 있다면 2년 정도는 수감생활할 용의가 있다는 젊은 층의 여론,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은 건물주라는 풍토, 원래는 봉사정신으로 슈바이처처럼 열대 우림에서 지내는 의료인의 모습이, 세상에 지방 의대까지 모두 섭렵되고 난 다음에 서울대라는 묘한 풍토로 극한 상황으로까지 몰아가는 상황에서
도데체 뭐가 정의이고 의미인지
사실 피로도가 높다 보니 생각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도데체 누가 한나 아렌트를 이제는 기억이나 하겠나 싶다
법술, 상술,
그저 show me the money!, otherwise, jst forget
이런 상황에 대한 한나라는 지성인의 논지가 어느정도 먹히기나 하겠나 싶다
그저 여론
그저 클릭 수, 정말 보고 싶어도 광고가 몇번 나오다 보면 그나마 유튜브도 보기 싫게 되니까, 이제는 네이브 클립이란게 나오고, shorts!
정말 고민을 주는 책이었다
그래도 한번은 꼭 보고 싶었고
워낙 재판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리뷰를 하다보니, 400쪽 비교적 큰 책에서 300쪽 이상은 지루하게 대조하는 사실비교 등이 시선을 놓치게도 하지만
서론에 대한 역자 김선욱씨의 탁월한 설명만 봐도 어쩜 충분할 것도 같다만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
상투어나 관용어 등은 늘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특징,
즉 현실 - 말 - 사유의 관계가 유기적이지 못하고 고정화시키기
언제나 전제되는건 보편적 원리나 준거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 사람의 존재. sensus communis 공통감
행위한다는 것은 탄생성의 조건에 대해, 인간적 응답을 하는 것
전범 재판의 피고들은 도착적이거나 가학적이지 않았다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인 것 같다
그 행위가 괴물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같지도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폭력은 차이를 지우려할때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값비싼 대가이다. 인종차별주의로서의 나치즘의 경우가 그러했고
아마도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그러했을 것이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유대인종을 이 지구상에 쓸어내려는 그런 단순화의 욕구가 이렇듯 큰 비극, 아픈 상처를 남기게 되었을 것이다
기술, 특히 미디어 기술이 우리를 점점 더 일차원적으로, 심지어 전체주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미디어가 메시지가 되어감에 따라, 미디어는 우리를 더욱 더 평범하게 획일적으로 그리고 생각없이 만든다. 정말 테레비, 악의 미디어가 된 셈인데, 이는 결국 우리들의 표피성, 피로감이 초래한 것이다. 무사유의 미디어
그렇다고 유튜버들은 이쪽과 저쪽 진영싸움에 우리를 표피적으로 상투적으로 만들기에, 참 살기 힘든 세상이 된 것 같다. 정말로 테레비를 전부 없애거나, 미디어를 상당히 없애는 것이 오히려 답이 아닐까 싶은데
바로 이런 것이 "단순화"의 욕구에 따른 값비싼 폭력으로 이어지 ㄹ개연성이 있을것이라. 미국인들이 파시즘의 화신 같은 트럼프를 선택하고, 이재명씨 같은 경우에, 이번에 보니까, 2002년부터의 사건이 22년만에 다시 재판에 오늘 것 같은데, 도데체가 이렇게까지 해서 뭘 굳이 달성하려고 하는건지, 그렇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표달성의 모습이 우리네 모습에 정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론 그렇다고 기존 수구세력, 기존 이해관계 이네들에게 평생 우리를 맡기는 것도 그건 아닌것 같고, 주기적인 정권교체는 필요할 것 같은데, 다만 좀 조용히좀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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