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하루, 박완서, 2012

2024. 3. 3. 18:57책 읽기 영화보기 등

728x90
반응형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빨갱이 바이럿흐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카메라와 워커; 박완서와 관악산; 김윤식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신경숙

닮은 방들; 김애란

===============

웬지 박선생님은 귀족스러운 느낌이 든다

한편, 20대쯤에 겪었던 625사변으로 인한 가족의 아픈 역사가 깊게 패여있어서

비로서, 동 사변의 깊은 상흔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그리도 어른들이 만나기만 하면 그 당시 [피란시절] 얘기를 하셨는지

이제는 좀 이해가 된다

그리고 6월 개학하자 마자, 서울대 문리과 대학

625사변이 발발하고,

피난 갈 엄두도 못내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그리고 동네 집들을 훑으면서 남아 있는 식량 들을 훔쳐서 먹다가

그리고 빨갱이들 세상 속에서, 얼추 견디어 내다가

실질 혜택은 없이, 오빠의 사회주의 사상 활동 흔적으로 고생은 하지 않다가

그럼에도 북에서는 끝내 오빠를 의용군으로 강제 징집하게 되어, 결국 피해는 당하고,

3개월여 뒤에 서울 수복 된뒤에는

돌아온 서울 사람들로부터, 빵갱이 집안이라는 수모 내지 모멸을 겪으면서 살다가

그때 그나마 서울대학 소속이라서

미군부대 PX에 취업하게 되고

비로서 생활을 시작하다가

1954년인가 남편과 결혼하고 4녀 1남을 낳게 되신다

1970년에 그러니까, 마흔 나이에, 처음으로 등단하게 되신다

그러면서도 개성의 양반 풍모를 잘 보여주

그리고 일제시대에서도 귀족적으로 보전되면서 컸던 모습이 남아 있다

===============

이로써, 한국 소설가의 한 축인 박완서님을 (1984년에 영세받으시고)

이제는 당분간 이문열씨를 읽으면서

잃어버렸던, 내지는 생각이 그늘로 잊혀졌던

1970년대를 상기하면서

살아온 길을 되새겨 보면서

다시금 살아갈 길을 여며본다

===============

대저, 본질이나 그런건 없을 것이다

모든 현상은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순간의 기억일 것이며

가능한 아름답게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이를 이어가는 삶의 과정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면서

기도지향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 같다

==================

그 옛날의 광영이 그럼 배고픈 시절이었단 말인가

자유를 위해가 아니라, 돈만 있으면 우유를 살 수 잇는 세상을 따라 월남

결혼도 해서 살림 재미도 보고 재산도 늘리고

상대나 법대로 풀릸수

까딱하단 문학이나 철학이나 하기

돈을 어떻하면 많이 벌수 잇나가 아니라 왜 버나 뭐 이런 생각하는 치들

취직을 안 한대도 뎅그런 ㅈ3ㅣㅂ한채 있으니 밥굶지는 않겠다

일제시대에 여고 입학이 요새 서울대 들어간 것보다 더 높이 평가

스무살에 전쟁을 겪은 뒤로 영혼의 나이가 멈춘 듯

동일성의 지옥, 남과 다르면 불안한데 또 같아지면 공허해진다. 그래서 같아지기(모방)와 달라지기(구별)의 악순환

비평이 이론에 의지하는건 형상적인 것을 개념적인 것으로 변환하기 위함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