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3. 12:24ㆍ생각나기
11월 30일에 고교 동창, 함께 6명 그룹으로 철원, 한탄강을 다녀왔다
20여년 그 이전에 장인 어른 모시고 산정호수에 간 이래 몇번 더 간게 고작이라
그 이상 북쪽으로 가보지 못했으니,
금번에 한탄강 지역 유람은 처음이다 싶다

고마운 동창 녀석들 때문에, 주상절리 (columnar joint:기둥 모양의 깍여진 연결모양) 길 3키로 걷고

겸재 정선이 그렸다는 화적연을 감상했다

벼가 쌓여있는 모습의 바위모양이 그 시절 정선 화가에게도 먼길 오도록 끌었었던 모양이라
그 유구한 예술의 흐름이여
그런데 그 중간에 잠시 눈에 띤게 대한수도원이었다

사실 한번도 와본적 없는 한탄강, 철원지역이고
예전에 룻교회에 다닐때에도 삼각산 수도원이었던가 몇번 가본 적이 있었던게 다였다만, 이름은 익히 들었었다. 원장님 존함도 기억날 정도이니까
그런데, 그 바로 다음날, 그 룻교회에 다니다가, 지금은 섬돌 향린교회에 다니는 오랜 친구 내외가 찾아왔다
참 묘하다 싶은건, 철원 나들이 하고, 저녁 6시 경에, 6명 일행중 2명 거주지인 쌍문동과 노원역쪽에 가까운 공릉동 멸치국수 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바로 이쪽 동네에 익일 방문했던 오랜 친구가 오랬동안 살았었다
공릉동 도착했을때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그날은 반장이라고 불리는 내가 바람을 잡아서^^ 소주 3병을 주당 3명이 나눠서 마셨으니,
참 맛있는 수제비를 안주로 삼되, 그 집은 김치와 깍두기가 진짜 우리나라 것이라고 해서, 어디서 오냐고 물어보니, 옥천에서 온다고 해서,
결국은 맛난 김치와 수제비, 멸치국수를 안주로 술이 잘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내가 상계동 지역에서 살았던게 1987년 제대하고, 쌍용증권(신한증권)에 첫 입사햇을때였고, 도곡동으로 이사온게 2000년이니, 얼추 `15년 가까이 살았었다. 마침 상계동 사는 동창는 신혼부터 산다니까 벌서 40년 가까이 사는 셈이란다. 그리고 근래 북부지검 재정범죄 합동수사반 출두하느라 도봉구에도 가봤고
그런데 한탄강 철원 방문한 날, 공릉동에서 뒤풀이 하게 되고
에전, 형제 모임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10여년, 중계성당 형제모임은 토요일 저녁 6시경 모여서 성서 읽고 그다음에는 술 한잔 하게 되고, 종종 노래방에도 가면서, 자매모임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았다만, 그 시절, 나이차이도 많았던 형제모임은 푸근했었다
그래서 현대건설 은퇴하시고 싱가폴에서 후속으로 프로젝트 작업하셨던 분은 내가 싱가폴 출장중에 한번 만나서, 태평양 sea food 같이 먹었으니, 이런 형제모임은 참 푸근하던 기억이 아쉽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고교 동창들에게도 했다만
나중에 반장이라고 주로 부르던 녀석이 한탄강 매운탕 점심을 내고, 여기 공릉동에서라도 내가 냈어야 했는데, 이건 쌍문동 고마운 녀석이 먼저 내고, 나중에 집사람에게 지적도 받는다만,
예전 15년 정도 중게동에 살았던 시절이 그립다는 이야기를 나눴다만
그 바로 다음날, 거기 살던 오랜 친구 내외의 내방을 받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대한수도원 이야기를 했더니, 잘 알더라
그리고 그 친구는 내가 군복무 시작했던 시절 조금 지나서 아마도 룻교회를 나와서
홍근수 목사님의 테레비 토론에도 감명받고, 서울대 출신 7명이 세웠다는 향린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본인의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향린교회 시절의 관계란다
그런데 내가 그날 고교 동창에게도 푸념삼아 이야기 하지만, 한상국 선생님, 상업선생님으로 사실은 내 옆반 선생님인데, 내게 아들 과외를 부탁하셨던 (배려셨던 것 같다만, 당시 과외는 불법이었는데도), 고전 선생님과 한선생님이 합세해서 담임선생님 이렇게 3분이서, 반강제로 경영학과에 지원하도록 설득하셨던게, 그중 특히 한선생님은 내 고교 선배이시자, 대학 선배가 되신 분이니, 지나온 35년 직장생활, 금융시장에서의 삶이 고달플때 푸념의 대상이셨다만, 바로 이분이 향린교회 다니셨던 것으로 안다. 당시 대광고교는 영락교회에서 졸업에배를 거행할 정도였는데, 비교적 운동권 교회로 알려진 향린교회에 다니셨던 한 선생님, 그분에 대한 푸념을 더러 하고 있는데, 이분은 사실 존경받는 선생님 이시다. 인상도 좋으시고. 그러니 사실 비난받을 분은 아니시라, 그러니 고교 동창들도 철학과 가서 뭐했겠니, 경영학과 잘 간건지 위로및 격려를 해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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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대한수도원, 철원에서 차로 지나다가 봤던 기억이 비교적 선명해서 관련 자료들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1996년 기록된 룻교회, 1시간 우리교회 좋은 교회 프로를 보면서 어쩌면 잃어버렸던 중2~대학, 거의 10년 가까이를 기억을 복원해 보았다
그때 동생 목사님, 전용재 목사님이 가장 먼저 기록에는 잡힌다. 기독교 감리회 총괄이 되셨는데, 내분으로 5년간 공백이 되었던 자리라니, 의미있는 매듭일 텐데
그분이 보니까 1949년 원산 출신이신 것
그렇다면, 보다 가까이 계셨던 전용범 목사님은 그 형님이시니, 내가 지금 모시는 분으로 서울법대 68학번 사장님이 50년생이신것 감안하면, 바로 옆에 자주 찾아오셔서 뵙는 이인제, 유인태 전 의원분들 이분들보다 더 연로하신 것이라
하긴 1996년 기독교 프로그램 녹화 시점이 벌써 30년 전에 가까운 것
참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전용범 목사님의 설교가 가장 가까운게 9년전이라니, 아마 2015년쯤에는 은퇴하신 것 같다
예전 내 개인적으로는 고마운 분이고, 가까우셨던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어쩜 가장 다시 기억하고 싶었던 분의 모습을, 생전 모습은 볼 수 있었다. 오늘에서야 존함도 기억하게 되었다만, 남산교회 담임이셨던 김창호 목사님. 내게는 연세대를 갔으면 하셨던, 부부가 꼭 같이 다니셨던 분
그분의 남산교회가, 보니까 내가 살던 반포에 있었다. 그래서 한번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거기에서 은퇴하시고 룻교회 오셨으니가, 그또한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종종 기돌교 관련된 이야기들이 부정적인게 많아서
내 스스로도 나서서 교회생활했다는 이야기를 한적은 없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카톨릭 성당다니기, 기꺼이, 한지가 이제는 큰누님때문에 처음 가본 교회생활보다 더 길다만
그러다가, 중2때 반친구, 성보 때문에 다니게 되었던 회기동 교회
그 시절은 돌아보면 참 순수했고
아름다웠던 추억이 적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몽땅 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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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예전 대광고교 시절, 교목님들도 나를 꽤 아끼셨고, 수요 예배 시간에 성직의 길로 가자는 말씀에 예라고 했다가, 그렇지 못해서 이렇게 2010년대 굴곡진 직장생활을 하고, 지금도 편안한 노후준비가 되지 못한 상황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는가 푸념을 할때가 있는데, 그걸 고교 동창이 상기시켜준다
어쩜, 룻교회, 전목사님 같은 분, 또 잊지 못할 고김창호 목사님, 그분들의 은혜로운 고마움을 저버리고 살았던 것, 그에 대해
최소한 기억은 되살려야 겠다고 싶다
물론, 카톨릭 이제는 40년 가까운 삶이지만, 그 어떤 지역에 출장을 가더라도 한번도 주일 미사, Roman Catholic 성당부터 호텔에서 체크했던, 비교적 성실한 편이긴 하지만, 비록 레지오 활동은 안하지만
어쨋든 내게 카톨릭이나 개신교는 큰 차이는 없다 싶다
오히려 같이 당구도 한번 쳐본 지금은 은퇴하신 신부님이 여전히 기억나고
숙소에 양주와 와인이 많았던 주교님과의 술자리
이런게 다 소중하며,
동시에 찬송을 수십번 반복해서 부르면, 그게 좌뇌가 아니라 우뇌로, 무의식의 깊은 영역으로 자리잡는다는 가르침을 간접적으로 주셨던 김창호 목사님, 그리고 월남전도 참전하셨고, 서른이 되어서야 신앙의 길로 들어선 늦깍이 전용범 목사님, 이런 분의 호의와 배려, 역시 이제 보니 그립다
다시 살아왔던 시절을 적절히 복원하면서
어떻든, 신앙의 길을 계속 왔던건 같다
근래 내게 큰 도움 주는 사회 주요 인사가, 내 고교 17년 후배라는걸 알면서 다시금 신설동 대광고를 상기하게 되고
얼마전 아들 녀석건 때문에 이래 저래 힘이 되주는 녀석과 같이 저녁먹고 소주한잔 한 장소도 신설역, 그래서 근처 고교를 잠시 걸어보기도 했다만
아쉬웠던 순간들, 기억들도 있지만
아팠던 가족사 한장면도 있지만
돌아보니 가장 순수했던 10년 가까운 시절이 룻교회와 같이 햇던 기간이었구나 싶다. 그대 대광고 시절이 병행되었고, 좀 방황했던 대학시절이 함께 했었다
그 거름들을 잘 뿌리로 가다듬으면서 더 줄기가 올라가게 될 것이라
제행무상, 제법무아, 공
이런 불교의 가르침도 종종 되새기지만
아무래도 2% 부족해서, 늘상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다만
근래 새로이 접하고 있는 프랑스에 이어 스페인쪽 묵상의 길을 매일 아침 잠시 명상하면서, 어둠의 시간, 그 믿음의 시간들이,
가난이 부유함보다 더 신앙적이며,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 싶은 깨달음도 있지만
내게 이제는 40년 가까운 카톨릭의 전통이 더 익숙해졌지만
그 어린 시절, 순수했던 학생시절의 교회생활, 대광고 시절도 이어서 기억하도록 하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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