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5. 18:21ㆍ책 읽기 영화보기 등
꽤 오랜 기간 서가에 꽂혀 있던 책인데,
달 읽고 보니, 1982년 간행이고, 저자는 2010년에 타계하셨고
그 역자인 김태홍씨도 1941년생이신 차 오랜 고서인셈

이젠 인테넷에도 표지 이미지가 없는 상황인데
참 인상깊게 읽힌 책이다
일본의 근대사에 대한 혜안 내지는 사료로서 풍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어쩌면 미국 정치경제학자가 이리도 세세한 내역을 다 알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
내가 대학다니던 1980년대엔 일본이 세계 1위였다
일본을 배우기 위한 노력과 자세가 대세였는데
일본 황궁을 팔면 캘리포니아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팽배했고


가장 먼저 기억나는 대목은
일본 근대사에서 막부시대를 종언시키고 개방과 황실정책을 세운 조슈와 샤스번 가문, 그네들이 마침 큐슈 지역에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처음 들을때 신기했었는데, 그리고 이등박문이 바로 이 쪽 사람이엇고, 그네들이 일본의 헌법적신의 기초를 세운 위대한 사람이라고 역설하던 1년 후배의 이야기였다
그때 우리에겐 안중군 의사의 척살대상으로만 알려졌고 대체로 썰렁한 쪽의 이야기만 전해지던 사람이 위대한 일본의 근대개척자 그룹이라고 하는 점에서 한편 역사의 아이러니도 느낀 바 있었다
늘상 떠오는 화두의 하나, 일본이 개화해서 자리잡는 동안에 그런 중에 도데체 우리는 뭘했는가?
그네들에게는 선각자 그룹이 있었고, 그게 샤스와 조수번이었던 것, 그네들중에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은 이또 히로부미라는 것
두번째 화두는 일본은 왜 만주국을 성립시켰고, 그겄까지는 이해하더라도, 왜 중국 본토를 공격하면서 중일전쟁으로 확전 (1941년)시키느라, 그게 이어서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1945년에 무조건 항복까지 이르렀는데
정말 이지점은 이해되기 어려웠다. 역사가 오랜 중국 대륙을 예전에 1592년 임진왜란시절에 부분적으로 점령 시도를 했던것 까지는 알겠는데
그게 1941년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잇는 장개석 국민당 정부를 공격할정도까지 그ㅓㅎ게 큰 나라는 아니었더 ㄴ일본이엇는데, 이 부분에서 선을 넘어도 단단히 넘었던 것. 그런데 이와같은 결정이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오늘 일부 이해하는바, 사실 만주국의 오족협화 (일,한, 몽,만주, 러시아), 그러니까 극동쪽 아시아권 민족들, 예전 부여국/고구려국의 일대가 만주지역이고, 사실 이쪽 민족들은 만주족 (여진족 Juchen), 말갈족,거란족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민족들의 집합체였고 이중에서 몽골의 징기스칸에 의해 세계적인 국가가 단명으로 마쳤지만 형서외었었던 것. 그네들이 한반도를 침공했던게 고려시절이고, 그때도 침범다ㅏㅇ하지 않았던게 일본 왜의 세력이었던 것
그네들 5족의 협화를 이념적으로 구상한게 만주국이었고, 그 내용들이 온존하게 살아서 살찌운 2세들이 하나는 일본의 고도경제성장 (10%대) 시절이었고, 1970년대 우리 한국경제였던 것이리라. 신현확, 최규하총리 대통령 등 웬만한 지식인들은 대부분 만죽국에서 설립하 만주군관학교나 만주대학을 나왔던 것으로 안다. 일본 열도에 직접 진입하기에는 벅찬 상황에서, 일본의 육군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감행된 만주국에는 이런 흡인력이 있었던 것이라. 거기에서 박정희 대통령도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졸업해서, 일본육사에도 뽑혔던 거슬 자랑삼아하기ㅗ 하다. 그러니까 이네들 적어도 1970년대까지 이네들 주력 정치인들은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술에 취하면 일본어로 대화하는게 어쩌면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같은 이들도 30여년 이상 지배당하던 상황에서 자연스레 일본에 대한 보은, 충성을 격려하는 연설을 하고 다녔던 것으로 안다
너무나 예민하고 아프다보니, 우리나라에는 사실 역사가 끊어져 있는 것 가다. 그 당시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 검토의 기회도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단련, 미쯔비시, 통산성 같은 고도 경제성장, 전후 폭싹 망한 일본 열도가 이렇게도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된 궤적에는
기시 노부스케같은 만주국의ㅣ 신진관료 세대가, 전후 다시한번 일본 경제의 소위 "일본 주식회사"를 이끌었기에 가능했고, 그 대를 이어서, 아베신조 총리가 마침 2년 앞선 박근혜대통령과 같이 한 적도 있었던것. 그것에 대한 일본 자체의 평가도 엇갈리는 경우가 더러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아예 금지어 취급받긴 할 것이다

어쨋든 한강의 기적과 일본의 고도성장경제, 그리고 안정화된 일본의 선진국 진입에는 이렇게 조슈와 샤스번 집안들, 이들 일본의 선각자 그룹이 기을 닦은건 분명ㅎ고 그런 점에서 많이 부럽긴 하다
다만 두번째 화두에서처럼, 중국의 북경에 대한 공격만 없었다면, 그게 태평양전쟁으로까지 확전되지 않고, 나름 아시아의 또다른 모습으로 나올 수 있ㅣ 않았겠냐라는 화두를 생각해본다.
이런 점에서 세번째 화두이루 있겟는데, 처음 의회정치가 일본에 도입되었을땡ㄷ 탄핵을 밥먹듯이, 줄탄핵의 관행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최근 우리 정ㅊ에 보이는 줄탄핵의 관행은 어쩜 정치발전의 한 과정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싶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그걸 100년전쯤에 미리 겪은 것이고, 그것이 경제와 더불어, 그리고 국제화되는 상황에 잘 맞춰지면서 오늘날 선진국으로 자리잡은 덧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하, 저자 차머스 존슨에 대한 기술 내용을 일부 게재한다
<블로우백> <제국의 슬픔>의 저자 찰머스 존슨 별세
"수정주의 학파의 대부… 미 대외정책에 대한 통렬한 비판자"
곽재훈 기자 | 기사입력 2010.11.22. 18:41:00<블로우백> <제국의 슬픔> <네메시스> 등 3부작을 통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통렬한 비판을 가했던 미국의 비판적 지성인 찰머스 존슨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 명예교수가 20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타계했다. 향년 79세.
존슨 교수는 지난 1982년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이란 저서를 통해 일본의 경제 발전은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을 따른 것이 아니라 일본 특유의 국가 주도 발전주의 모델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 '발전국가'의 개념을 처음 정립했으며 이를 통해 학문적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까지 일본의 경제발전이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해온 로버트 스칼라피노 등 이른바 지일파 지식인들(국화클럽으로 알려진)의 통념에 도전하는 것으로 이후 존슨 교수는 '수정주의 학파'의 대부로 불렸다.
발전국가란 국가가 산업 전략을 수립하고 경제에 개입해 성장을 견인한다는 개념이다. 존슨 교수는 이 저서에서 일본 통산성(MITI)이 경제발전의 '사령탑' 구실을 했다고 보았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기획원'이 이런 역할을 했다.
이후 존슨 교수는 1995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 해병 3명이 12살짜리 일본 소녀를 강간한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 미 제국주의에 대한 고발 작업에 나선다.
그가 2000년에 펴낸 <블로우백: 미 제국의 대가와 결과>는 CIA를 통한 은밀한 군사작전이 결국에는 미국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언한 저서로 2001년 9.11사태 이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 이후 그는 <제국의 슬픔>(2004년) <네메시스>(2006년) 등을 통해 미국의 군사지배를 고발하면서 더이상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적 행태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해왔다. 그리고 지난 8월 마지막 저서 <제국을 해체하라: 미국의 마지막 희망)을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국을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슨 교수는 1931년 애리조나 출생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U.C. Berkeley)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농민민족주의와 공산당의 힘>으로 중국의 공산주의가 계급투쟁적이기보다는 민족주의임을 밝힌 것이다. 그는 학부 졸업 후인 1953년 한국전쟁에 해군 장교로 참전했으며 이때부터 동아시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냉전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베트남 전쟁에 찬성하는 등 '냉전의 전사'였으나 소련 붕괴 이후에는 미국의 군사주의 팽창 전략을 강력히 비판해 왔다.
|
▲ 고(故) 찰머스 존슨 교수 ⓒ커먼드림스(www.commondreams.org)
|
"날 죽은 셈 치게나"
스티브 클레몬스 미국 '뉴아메리카재단' 연구원은 그가 운영하는 정치 블로그 '워싱턴 노트'에 존슨 교수의 타계 소식을 알리며 그를 추모했다.
클레몬스는 "존슨 교수는 '발전국가'의 개념을 창안했다"며 특히 중국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현재의 국제 정세에서 그의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존슨 교수가 9.11 테러 전에 <블로우백>의 집필을 마쳤는데, 9.11 테러가 나자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출판 업자들은 독자들의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오늘날 '국가자본주의'는 세계 경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새롭고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존슨 교수가 이 영역을 창시했고 다른 국가들의 발전 전략은 소위 '미국식 모델'이라 불리는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밝혀냈다. 존슨 교수의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은 뉴스위크의 로버트 네프가 그에게 '수정주의 학파의 대부'라는 별명을 붙여 주는 계기가 됐다.
오늘날 중국의 부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존슨 교수의 '발전국가'에 대한 저작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는 중국에서의 경제발전은 공산주의나 계급투쟁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민족주의가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베트남의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클레몬스는 "존슨 교수는 일본과 같은 국가들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전 세계적인 군사 네트워크를 유지시키는 것에 대해 미국은 더 이상 아무런 논리도 없다고 말했다"며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일찍이 경고한 바 있는 '군산복합체'가 존슨 교수의 마음 속에, 그의 저작 속에 자주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한 클레몬스는 존슨 교수와의 개인적인 일화를 소개하며 그를 추억하기도 했다.
내가 존슨 교수를 방문했을 때, 존슨 교수는 아내인 샤일라와 일본 통산성과 재무성의 약자인 'MITI'와 'MOF'라는 이름의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국제관계위원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라는 비정부기구가-외교전문잡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를 펴내고 있는-보수적인 대외정책의 박수부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분개해 이 단체에 전화를 걸어 회원 탈퇴를 요구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죄송하지만 평생 가입이 원칙이라 탈퇴는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존슨 교수는 답했다. "그럼 나를 죽은 셈 치게나."
그러나 최소한 나는 그를 '죽은 셈 칠' 수 없다. 그는 이 시대의 지적 거인이었다. 앞으로도 한 세기 동안 그와 그의 저작은 계속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아디오스,' 존슨!
존슨 교수의 친구이며 그의 책 편집을 맡기도 한 미국 역사학자 톰 엥겔하트도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톰디스패치'를 통해 존슨 교수의 부고를 전했다.
엥겔하트는 "그는 가장 뛰어난 저자 중의 하나였으며 그의 글을 편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고 회고하며 "그가 쓴 글의 한 단어 한 단어가 나에게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엥겔하트는 "한때 냉전의 전사였던 그는 미국의 군사주의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자가 됐다"며 "그는 우리에게 '이 파산한 미국이 과연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보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고인의 업적을 평가했다.
'책 읽기 영화보기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HMR 꽤 바뀐 식생활, 프렌치스푸 (2) | 2025.05.14 |
---|---|
형이상학 입문, 하이데거, 1933 (4) | 2025.05.13 |
Notes from a Native, 1954, James Baldwin (6) | 2025.04.22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2012, 대런 애쓰모글로, 로빈슨 (3) | 2025.04.17 |
근태 선생 관찰기, 2019, 최만영 (6) | 2025.04.11 |